법원 서류 뭉치를 들고 동네 법률구조공단을 찾아갔던 날

법원 서류 뭉치를 들고 동네 법률구조공단을 찾아갔던 날

처음엔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다

며칠 전 새벽에 잠이 안 와서 이것저것 뒤적거리다가 우연히 기사를 하나 봤다. 연체 채권 1조 원을 새도약기금에서 매입한다는 내용이었는데, 기초생활수급자 같은 취약계층은 상환 능력 심사 없이 채무가 소각될 수도 있다는 대목에서 한참을 멈춰 있었다. 사실 나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추심 전화에 거의 해탈한 상태였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아예 받지 않는 게 일상이 된 지 오래라, 이런 소식이 들려와도 ‘진짜 내 얘기가 맞나’ 싶어 일단 의심부터 하게 된다. 개인파산이나 회생 같은 단어들은 뉴스나 인터넷 광고에서 하도 많이 봐서 익숙했지만, 막상 내 상황에 대입하려고 하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정말 감이 안 왔다. 변호사 사무실 문을 두드려볼까 하다가도 수임료라는 벽이 너무 높게 느껴져서 포기했던 기억만 자꾸 떠올랐다.

신속면책이라는 이름의 낯선 제도

조금 더 찾아보니 신속면책이라는 게 있었다. 기초생활수급자나 70세 이상 고령자, 아니면 중증 장애인처럼 상황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파산관재인 선임 없이 절차를 빨리 끝내주는 제도라고 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정말 다행인데, 막상 서류를 준비하려고 보니 막막함이 밀려왔다. 법원 사이트를 들어가 봐도 무슨 소리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예전에 친구가 개인회생을 하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힘들게 사는 걸 옆에서 봐서 그런지, 괜히 신청했다가 더 복잡해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밤새 떠나질 않았다. 주변에서는 그냥 버티다 보면 없어지기도 한다는데, 그 버티는 시간 동안 들어오는 스트레스는 누가 책임져주나 싶기도 하고.

서류 준비를 하다 지쳐버린 오후

동네 가까운 곳에 신용회복위원회가 있다는 말을 듣고 일단 상담이라도 받아보기로 했다. 상담 예약 시간이 오후 2시였는데, 10분 전에 도착해서도 한참을 서성였다. 내가 여기 왜 와 있나 싶기도 하고, 막상 들어가서 내 상황을 다 털어놓으려니 왠지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상담해주시는 분은 생각보다 담담하게 말씀을 하셨는데, 내 채무 내역을 보고는 ‘이 정도면 개인파산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게 낫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파산 신청이라는 게 그냥 서류 몇 장 내면 끝나는 게 아니었다. 통장 거래 내역부터 시작해서, 가족 관계 증명서, 그리고 왜 이렇게까지 상황이 안 좋아졌는지에 대한 진술서까지. 솔직히 나도 잘 모르는 과거의 소비 내역들을 다 찾아내야 한다는 게 너무 괴로웠다.

법원 근처에서 느꼈던 묘한 기분

상담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대전 회생법원 근처를 지나가게 됐다. 거대한 건물을 보면서 ‘저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사연을 안고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취약계층 대상 대면 신용교육도 한다는데, 막상 내가 그 대상자가 되어 법원 앞을 걷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다들 비슷비슷한 처지일까, 아니면 나만 이렇게 구멍 난 주머니를 꿰매려고 애쓰고 있는 걸까. 1조 규모 연체 채권이 소각된다는 기사를 보고 희망을 가졌던 마음과, 막상 현실의 서류 뭉치를 마주했을 때의 무게감은 정말 천지 차이였다. 당장 다음 주에 필요한 서류 리스트를 수첩에 적어놨는데, 이걸 다 떼려면 또 반차를 내거나 시간을 내야 한다. 먹고 사는 게 바빠서 신청을 미루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들

사실 개인파산 절차를 밟는다고 해서 모든 게 마법처럼 해결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오히려 파산 신청 이후의 삶이 더 걱정된다. 신용불량자라는 꼬리표는 떼어낼 수 있을지 몰라도, 사회적 시선이나 앞으로 다시 경제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하다. 혹시나 내 상황이 ‘신속면책’ 대상에서 제외되면 어떡하지? 아니면 중간에 보정 명령이라도 떨어져서 몇 달을 더 골머리를 앓게 되면 어떡하지? 그런 사소한 걱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누군가는 개인회생이 낫다고 하고, 누군가는 파산이 답이라는데 정답은 없는 것 같다. 결국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데, 그 판단조차 제대로 서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오늘은 일단 서류 몇 장 더 떼보고, 잠이나 푹 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