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갑자기 우체국 아저씨가 건네준 등기 봉투를 받고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 익숙한 서체로 찍힌 법원 로고, 평소에 절대 받을 일 없던 서류였다. 뜯어보기도 전에 알 수 있었다. 언젠가 터질 문제라는 걸 알면서도 눈을 감고 살았던 카드값과 대출이 드디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통장 압류 해제라는 단어를 검색창에 수도 없이 쳤지만, 화면 속 글자들은 하나같이 너무 차가웠다.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 수임료 견적을 물어보니 적게는 150만 원에서 많게는 300만 원까지 불렀다. 당장 밥값도 아쉬운 판국에 그 큰돈을 어떻게 마련하라는 건지, 상담 실장님의 건조한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신용회복위원회냐 개인회생이냐의 갈림길
혼자서 끙끙 앓다가 신용회복위원회에 전화를 걸어봤다. 상담사분은 친절했지만, 결국 원금은 거의 다 갚아야 한다는 말에 힘이 쭉 빠졌다. 도박 빚이나 과도한 카드 돌려막기로 엉망이 된 상황에서 원금 상환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커뮤니티에서는 개인회생이 답이라는 말이 많았지만, 그건 또 국가기관을 상대로 하는 싸움이라 서류 준비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서류를 떼러 동사무소에 갈 때마다 등 뒤에 누가 서 있는 것 같은 불안함이 느껴졌다. KB국민은행이나 신한금융에서 사회적 배려자 채무 감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기사를 읽었지만, 그건 내가 해당될 리 없는 이야기 같았다. 그저 은행들의 생색내기용 정책이 아닐까 하는 삐딱한 마음마저 들었다.
압류가 들어오고 나서 겪은 불편함
통장에 딱 10만 원이 들어왔는데 이게 압류가 걸려있으니 출금도 이체도 안 됐다.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하나 사 먹기도 눈치가 보였다. 부동산 압류나 급여 압류가 들어오면 직장 생활도 꼬일 텐데 하는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가압류 공탁금이라는 단어는 왜 이렇게 생소하고 어려운지. 법률 용어들이 내 숨통을 조여오는 기분이었다. 누군가는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해서 이자라도 줄이라고 했지만, 이미 통장이 묶인 상태에서는 뭘 해도 뒷북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차라리 다 내려놓고 개인회생 신청을 해버리는 게 마음 편하지 않을까 싶다가도, 매달 나가는 변제금을 3년 동안 꼬박꼬박 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빚 탕감이라는 말 뒤에 숨은 현실
뉴스를 보면 원금의 90%를 감면해 준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막상 내가 겪는 현실은 다르다. 신청 조건은 왜 이렇게 까다로운지, 서류 한 장 부족하면 보정 명령이 내려와서 또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 내 상황을 설명하다가 울컥해서 상담원 앞에서 말을 잇지 못한 적도 있다. 회생 신청을 하면 변호사 비용 외에도 인지대나 송달료가 계속 들어간다. 분명 빛을 보려고 시작한 일인데 왜 하면 할수록 더 늪으로 빠지는 기분이 드는 건지 모르겠다. 1조 9천억 원 규모의 포용금융을 한다는 뉴스를 봐도 내 통장은 여전히 차가운 빨간 딱지가 붙어있는 느낌이다.
끝나지 않는 불안함과 앞으로의 과제
상담사들은 다들 ‘조금만 버티면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조금’이 3년이 될지 5년이 될지 아무도 확답해주지 않는다. 소상공인 지원금이나 만기 연장 같은 건 나 같은 평범한 채무자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매일 아침 은행 앱을 켜서 잔액을 확인하는 게 버릇이 됐다. 돈이 들어와도 내 돈이 아닌 것 같은 기분, 이 불안함이 언제쯤 사라질지 알 수가 없다. 어쩌면 이 문제는 완벽하게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저 고통의 총량을 조절해가며 평생 안고 가야 하는 숙제가 아닐까 싶다. 변호사에게 준 돈이 아깝지 않게 제발 잘 처리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해결되지 않은 찝찝함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