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갑자기 우체국 등기가 왔다. 평소에 올 것이 없는데, 받는 사람 이름이 내 이름으로 딱 박혀있으니 덜컥 겁부터 났다. 법원에서 보낸 서류였는데, 봉투를 뜯기도 전에 손이 좀 떨렸다. 예전에 친구 녀석 보증을 잘못 섰다가 뒤늦게 문제가 터진 적이 있었는데, 그게 결국 여기까지 온 모양이었다. 채권압류 및 전부명령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가 적힌 서류 뭉치를 보는데, 머릿속이 하얘지더라.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일단 인터넷에 검색부터 해봤다. 다들 변호사를 선명하느니, 법률 구조 공단을 찾아가라느니 하는데 당장 내 수중에 그런 일을 처리할 여윳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1397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1397 신용회복위원회 번호를 눌렀다. 점심시간 직후라 그런지 대기 시간이 꽤 길었다. 한 15분 정도 멍하니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나 보다. 상담원은 목소리가 차분했는데, 내 상황을 설명하니 기한이익상실 이야기를 꺼냈다. 이미 신용등급은 7등급 아래로 떨어진 지 오래고, 연체 기록 때문에 은행 문턱은 꿈도 못 꾸는 처지라는 걸 상담원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받으니 기분이 참 묘했다. 상담료는 무료라고 하던데, 사실 전화 한 통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건 나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화를 끊고 나니 일단 무언가를 했다는 안도감이 아주 잠깐 들었다.
채무자 대리인 제도가 있다고는 하는데
주변에서는 요즘 청년들이 채무자 대리인 제도를 많이 쓴다고들 했다. 창원신용회복위원회 쪽 소식을 듣다 보니 그런 지원책이 꽤 늘었다는 기사도 눈에 들어왔는데, 막상 내가 직접 신청하려니 절차가 너무 복잡하게 느껴졌다. 채무불이행자 명부에 이름이 올라가는 건 시간문제인 것 같고, 법원에서 요구하는 재산 목록 작성은 또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예금 잔액이 하나도 없는 계좌까지 다 적어야 하는 건지, 압류된 계좌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건지 하나하나 따지다 보니 밤이 깊었다. 무슨 법률 시험 공부하는 것도 아니고, 서류 하나 작성하는 데 며칠을 썼는지 모르겠다.
주식 계좌와 잔액 없는 통장들
법원에서는 계좌정보통합관리서비스 상세 내역을 다 뽑아오라고 했다. 10년 전에 쓰다 말았던 증권사 계좌, 잔액이 0원인 통장들까지 다 리스트에 올렸다. 이걸 다 제출하고 나면 내 삶이 더 비참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서류를 다 준비해서 법원에 보낸다고 해서 당장 내 상황이 나아지는 건 아니지 않나. 그냥 절차일 뿐인데, 마치 내 인생의 실패를 문서로 증명하는 기분이었다. 법원에 서류를 제출하러 가는 날,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창밖 풍경이 유난히 낯설게 보였다. 다들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일상을 살아가는데 나만 벼랑 끝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결론 없는 기다림
결국 서류는 제출했다. 법원 직원도 아주 건조한 목소리로 서류를 확인하고는 접수되었다고만 했다. 이제 뭘 더 해야 하는지 물어봐도 ‘기다리라’는 말밖에 없었다. 채무불이행자 명부 등재를 막을 수 있을지, 아니면 그냥 이대로 신용불량자 상태로 살아가야 하는지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 상담할 때는 뭔가 해결될 것처럼 말했지만, 결국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무게는 줄어들지 않았다. 밤에 가끔 울리는 문자 알림 소리에 놀라 깨는 습관이 생겼다. 그게 독촉 문자일까 봐, 혹은 또 다른 법원 등기일까 봐 겁이 나는 모양이다. 다음 달이면 또 다른 고지서가 날아올 텐데, 그때는 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계좌 정보 통합 관리 서비스 내역 준비하라고 한 부분에서, 10년 전에 쓰던 계좌까지 찾으셨다니 정말 정신이 없을 것 같아요.
계좌 정보 통합 관리 서비스 내역을 뽑아보라는 게, 마치 과거의 망치처럼 둔감하게 내 상황만 짚어주는 것 같았어요.
채권압류 위기의 순간, 과거 친구의 보증 문제 기억이 났어요. 지금처럼 바로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는 답답함이 느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