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류 떼는 일이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아침부터 날씨가 참 애매했다. 비가 올 것 같으면서도 안 오는, 습기만 가득한 날이었다. 집에서 법원까지 가는 길은 꽤 멀게 느껴졌다. 사실 법원이라는 곳 자체가 인생에서 그리 자주 올 곳은 아니지 않나. 처음엔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검색해보면 금방 해결될 줄 알았다. 소위 말하는 채무조정이나 면책 신청 같은 것들이 그냥 신청서 몇 장 쓰면 끝나는 줄 알았으니까. 그런데 막상 서류를 챙기기 시작하니 그게 아니었다. 주민센터에서 떼야 할 서류만 해도 대여섯 가지가 넘었고,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로 꼼꼼하게 요구하는 서류가 많았다. 수수료로 몇 천 원씩 나가는 것도 쌓이니 은근히 신경 쓰였다.
무작정 찾아간 창구에서 마주한 현실
법원 앞에는 비슷해 보이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다들 표정이 밝지 않았고, 나처럼 서류 봉투를 꽉 쥐고 있었다. 창구 직원은 내 서류를 훑어보더니 보정 명령이 나올 수도 있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그 말이 왜 그렇게 무겁게 들리던지. ‘면책신청’이라는 단어 하나에 내 지난 몇 년이 묶여 있는 기분이었다. 사실 파산선고까지 가야 하는 건지, 아니면 회생 절차를 밟는 게 맞는 건지 지금도 100% 확신이 서지는 않는다. 주변에서는 개인회생이 낫다, 파산이 낫다 말이 많은데, 정작 내 상황을 놓고 보면 어느 하나 딱 떨어지는 답이 없었다. 상담 비용도 부담스러워서 혼자 해보겠다고 용을 썼는데, 그게 지금 와서 보면 잘한 선택인지 모르겠다.
잊을 만하면 걸려오는 전화들
개인 채무가 연체되고 나서부터는 전화벨 소리만 들려도 심장이 내려앉았다. 요즘은 새도약기금이니 뭐니 해서 장기 연체 채권을 매입해서 추심을 중단해준다는 뉴스를 보긴 했다. 23만 명인가가 혜택을 받는다고 하던데, 솔직히 그게 내 이야기가 될지는 의문이다. 이미 신용카드는 정지된 지 오래고, 통장 압류가 들어올까 봐 매일 아침 은행 앱을 켜서 잔액부터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됐다. 친구들한테는 말도 못 하고, 혼자서 끙끙 앓다가 밤을 새우는 날이 많아졌다. 이 조용한 공포가 언제쯤 끝날지, 정말 법적인 보호를 받으면 독촉 전화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건지 아직은 의심이 먼저 든다.
법원 근처에서 먹은 점심의 맛
서류 제출을 마치고 나오니 오후 2시가 훌쩍 넘었다. 근처 식당에서 7천 원짜리 백반을 시켜 먹었는데, 맛이 기억나지 않는다. 밥알이 모래를 씹는 기분이었다. 식당 TV에서는 또 다른 금융 지원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IBK 착한금리 포용대출이니, 신용회복위원회의 지원이니 하는 것들. 하지만 당장 오늘 내 발등에 떨어진 불은 꺼지지 않았다. 차라리 직장에 다니면서 월급이라도 일정하게 나오면 나았을 텐데, 지금은 그마저도 불안정하니 모든 게 불확실하다. 법원 앞을 떠나면서도 뒤를 자꾸 돌아보게 됐다. 내가 뭘 잘못해서 여기까지 온 건지, 아니면 그냥 살다 보니 이렇게 된 건지 답 없는 질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앞으로 더 남은 기다림의 시간들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누군가 말해줬다. 서류 접수하고 나서 심사 기간만 몇 달이 걸릴지 모른다고 했다. 법원에서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혹시나 보정 서류가 부족해서 다시 법원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기운이 빠진다. 누군가는 개인회생을 해서 빚을 갚아나가는 게 새 출발이라고 하지만, 내게는 여전히 긴 터널을 지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오늘 법원에서 가져온 서류 봉투를 책상 구석에 던져두었다. 내일 다시 펼쳐볼 용기가 날지 모르겠다. 당분간은 그냥 이대로 두고 싶다.
주민센터 서류 준비하느라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구요. 제가 신청서 작성할 때도 너무 급하게 해서 실수가 많았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