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는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평소처럼 편의점에서 커피 하나 사서 나가려고 카드를 긁었는데, 잔액 부족도 아니고 ‘거래 정지’라는 말이 화면에 떴다. 순간적으로 무슨 오류인가 싶어서 옆에 있던 다른 카드를 꽂았는데 똑같았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뭔지 처음 알았다. 급하게 은행 앱을 켜서 내 계좌를 조회해 보니 출금 가능 금액이 0원이 되어 있었고, 그 밑에 작게 ‘압류’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날벼락 같은 압류 통보의 현실
사실 빚이 아예 없던 건 아니었다. 몇 년 전 무리하게 사업을 하겠다고 지인에게 돈을 빌렸다가 잘 안되면서 갚지 못하게 된 빚이 조금 남아있었다. 조금씩이라도 갚아야지 생각만 하고 매달 생활비 쓰느라 바빠서 사실상 방치하고 있었던 거다. 은행 고객센터에 전화를 해보니 상담원은 상담 내내 너무 건조한 목소리로 어디 법원에서 압류가 들어온 건지 사건 번호만 툭 던져줬다. 그게 전부였다.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장 오늘 당장 먹고살 돈은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 따위는 전혀 궁금하지 않다는 말투였다. 법원 사건 번호를 받아 적으면서 손이 떨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통장압류해제를 위해 발을 굴렀던 시간
결국 법률 구조 공단에 전화를 해봤는데, 연결되는 데만 30분이 넘게 걸렸다. 상담사는 차분하게 개인회생이나 파산 절차를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아니, 나는 당장 내일 집세랑 식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가 급한 건데, 갑자기 몇 달이 걸릴지도 모르는 회생 절차를 이야기하니 머리가 아득해졌다. 통장압류해제를 하려면 결국 채권자랑 합의를 하거나 돈을 다 갚아야 하는데, 그게 됐으면 애초에 압류까지 오지도 않았을 거다. 법원에 가서 ‘압류 범위 변경 신청’이라는 걸 하면 생계비 정도는 찾을 수 있다는데, 서류 준비하는 것 자체가 너무 복잡했다. 관할 법원이 집에서 버스로 한 시간 반이나 걸리는 곳이라, 반차를 내고 직접 서류를 떼러 가야 하는 상황이 되니 서글프기까지 했다.
빚 문제를 바라보는 나의 미묘한 변화
뉴스를 보면 요즘 은행들이 중저신용자 대출을 많이 늘렸네, 포용금융을 하네 하는 기사가 쏟아진다. 카카오뱅크나 토스뱅크 같은 곳들이 기술력을 동원해서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정교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들 말이다. 그런데 정작 이렇게 한번 사고가 터지고 나니 그런 말들이 다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실제로 주변에 연체 차주들 중에서도 채무조정 권리를 행사하는 사람은 100명 중 6명도 안 된다고 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이게 권리인지조차 잘 모르고, 알더라도 막상 은행 창구에 가서 고개를 숙이고 내 사정을 말하는 게 얼마나 비참한지 겪어본 사람만 안다. 서류 더미 속에 파묻혀서 내가 갚아야 할 돈과 미래의 가능성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이 시간이 언제쯤 끝날지 알 수가 없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들
지금은 일단 급한 대로 가족에게 조금 빌려서 대리인 상담을 받아볼까 고민 중이다.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 같은 건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매일 통장 볼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아서다. 사실 내 빚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꼬인 건지 이제는 가물가물할 정도다. 누군가는 대위변제를 해줬다고 하고, 누군가는 채권이 넘어갔다고 하고. 채권자가 자꾸 바뀌니까 대체 누구한테 말을 해야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법원 서류에 적힌 복잡한 용어들을 읽고 있으면 이게 사람 사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기계적인 숫자 놀음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어제는 밤새 잠을 못 자고 휴대폰으로 ‘개인파산’을 검색하다가 결국 포털 사이트 광고만 몇 개 누르고 말았다. 아무래도 내일은 연차를 쓰고 다시 법원에 한번 가봐야겠다. 이렇게 글을 쓰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같기도 한데, 여전히 통장 앱을 열어보는 건 두렵다. 압류 표시가 그대로 남아있을까 봐.
실제로 그런 상황이 생겼던 분들께서는 얼마나 당황스러울지 짐작하기 어렵네요. 압류 통보를 받은 후의 혼란스러움이 느껴졌습니다.
은행 고객센터에서 느꼈던 건조함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마치 숫자로만 존재하는 것 같아요.
집세 때문에 정말 답답했을 것 같아요. 압류 상황에서 생계비 해결을 위해 법원에 바로 신청하는 게 얼마나 절실했을지 짐작이 가네요.